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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가 원래 Agent인데,이번에 본사에서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Agent사를 인수를 했거든요. 그런데 아직 지사 설립 준비 중이라 이번 건까지는 Agent사로 계약 체결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자자 침착하게 따져보자. 우선 Agent와 지사의 차이점이 뭐지? Agent하면 운동선수들 Agent가 떠오르는 데, 요새 유럽축구 보면 Agent들이 이적료 챙기려고 구단이랑 선수들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것 같던데, 그럼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는 취하는 사람이 Agent인가? 지사는 또 뭐야? 해외 주재원들이 가는 곳이 지사 아닌가? 나도 기회가 되면 주재원 가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지사는 왠지 모르게 긍정적인 느낌이야. 그러면 Agent랑 계약 하면 안되는 거 아니야?

 

 문득 나의 무지함에 스스로 감탄하여 현자 타임이 찾아온다. 남의 돈 벌어먹기가 어렵다는데, 일을 이따우로 쉽게 해치우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건 혼자서 함부로 결정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선배에게 자문을 구한다.

“아니 대학생 때 문과였다면서 이것도 몰라? 학생 때 공부 열심히 안했구나?”

 할말하않. 이과 선배님께서는 우주의 자연법칙 빼고는 세상의 모든 지식은 문과에서 배우는 줄아나보다. 악의가 없는 농담조라, 그렇지만 틀린 말 하나 없어 더욱 뼈가 시리다. 그 많던 우리 부모님의 등록금은 누가 먹었을까? (누가 먹긴 내가 먹었지)

 


 

 구매 업무를 하다 보면 구매지식 외에도 생각보다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필요하다. 구매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법무적 지식, 협력사의 경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회계적 지식, 신속한 납기 대응을 위한 무역지식 등. 회사를 대표하여 협력사를 상대하는 역할을 맡다보니 Generalist적인 면모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두가 Generalist가 되는 건 아니다. 구매 담당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위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전설의 알쓸신잡형’. 그리고 모든 문의를 유관부서로 위임시켜 버리는 ‘전설의 블로커형’.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한 때는 블로킹 꿈나무로 이름을 날렸었다. (어쩌면 지금도)

잡설이 길었는데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구매계약의 주체’이다. 국내 기업간의 거래라면 딱히 문제될 부분이 없다. 하지만 외국 기업의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라면, 대리점, 총판회사, 한국지사 및 법인 등 계약 주체가 다양하여, 어느 주체와 계약을 맺어야 할지 혼동스러운 경우가 발생한다. 가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주체와 구매계약을 맺어 진땀을 빼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간단하게 대리점과 총판회사, 그리고 지사와 법인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대리점과 총판회사의 차이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판매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어느 기업이던 회사 설립 초기부터 해외진출을 염두하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창업주가 마음속으로 해외진출의 원대한 포부는 갖을지언정, 실제로 비용을 지불해가며 해외진출을 위한 인프라부터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처음에는 내수 시장에 집중하며 회사의 내실을 키울 것이다. 그러다 규모가 커지면서 제품이 해외로 알려지게 되고, 해외의 구매자로부터 판매 제안을 받게 된다. 아직 인프라가 부재한 상황이므로, 중간에 현지의 조력자를 내세워(판매자와 조력자 간의 계약을 맺어) 거래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 조력자로써 흔히 손을 잡는 회사가 바로 대리점과 총판회사이다.

 

 영어로 대리점은 Agent, 총판회사는 Distributor라고 불리지만, 선뜻 그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판매자와 조력자의 계약 관계에서 누가 판매권을 갖고 있는 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대리점은 말 그대로 판매자를 대리하여 판매, 판촉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일 뿐, 판매권은 여전히 판매회사가 갖고 있다. 따라서 대리점은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계약은 구매회사와 판매회사 간에 이루어지고, 대금도 판매회사로 직접 지불된다. 대신에 대리점은 계약 체결의 대가로 수수료를 받음으로써 수익을 챙긴다. 구매 업무 시에 종종 일어나는 실수가 대리점으로부터 견적을 받거나,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다. 그렇지만 판매권이 없는 대리점은 계약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 총판회사는 판매회사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판매권을 위임받는다. 다시 말해 구매회사의 상대방으로써 계약 체결이 가능하며, 대금 역시 총판회사에게로 지불된다. 다만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책임도 총판회사가 지게 된다. 결국 총판회사는 판매회사와 구매회사 사이의 중간상인 같은 역할을 맡는다. 수입원 역시 판매회사로부터 사들인 금액과 구매회사로 판매한 금액의 차액이 된다.

 


 2. 지사와 법인의 차이

 지사와 법인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판매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보자. 진출 초기에는 대리점이나 총판회사 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거래가 잦아질수록 판매자는 이러한 거래방식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대리점과 총판회사는 계약을 통해 움직이는 말그대로 조력자일 뿐이기 때문에, 판매자가 컨트롤하기도 쉽지 않고, 계약 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쉽지가 않다. 결국 판매회사는 현지에 지사나 법인을 설립하여 직접적인 진출을 도모하게 된다.

 

 해외지사는 본사를 대신하여 현지에서 영업활동을 영위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본사에 종속되어 있어 본사의 한 조직으로써 직접적인 관리를 받는다. 특히 해외 진출 초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지사를 설립하는 경우에는 그 손실을 본사의 이익으로 상계처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구매 담당자 입장에서는 지사를 통해 본사와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본사의 입김이 강하여 가격협상이나 계약조건을 확정할 때 난항을 겪는 부분이 많다. 지사의 영업담당자와 협의를 하다보면 ‘본사의 정책 때문에…’ 라는 얘기를 정말 자주 듣게 되는데, 이럴 때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정말 어렵다.

 하지만 위의 상황은 판매회사가 독점시장이거나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경쟁자가 많은 시장이라면 판매회사는 보다 현지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현지법인을 세워 적극적인 시장 진출을 꾀하게 된다. 해외 법인은 지사와 달리 본사와는 별개의 독립조직이다. 본사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기본적으로 회계 처리 등이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해외법인은 현지국의 상법을 적용받게 된다. 특히 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정책도 현지의 법령을 따르기 때문에, 현지 국가에서 외국기업에 면세혜택을 주는 경우라는 현지법인을 세우는 큰 동기가 된다. 법인 설립의 가장 큰 장점은 현지의 시장환경에 맞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며, 구매 회사의 입장에서도 현지법인과의 거래는 내자거래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내 업체와 동일한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국내 제조업에서 해외의 현지법인과 거래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결국 구매자의 입장에선 계약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판매자의 대응도나 협상력이 차이가 나므로, 이에 맞춰 구매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일반론적인 얘기고 현실에서는 회사마다 세부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계약주체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상대방에게 내부 사정을 훤히 공유할 리가 만무하기에 정보는 얻는 일도 쉽지 않을뿐더러, 구매자의 요청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대리점을 통해 계약을 하는 경우, 대리점에서는 웬만하면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마치 판매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판매회사와 대리점 간의 계약서를 검토하는 식의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구매담당자에게 감당하지 못할 후폭풍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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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돌이의 구매 - 1. 사급이냐 도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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